|영업사원에게 7회에 걸쳐 발기부전제 1361정 처방 발각
|하급심 판결 엇갈렸지만 대법원 "의료법 위반" 종지부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의 이름으로 처방전을 발급하고, 이를 영업사원에게 교부한 의사.
처방 상대가 존재하지 않는 '처방전'을 발급해 제3자에게 넘기는 행위를 놓고 1심과 2심 판단이 엇갈린 가운데 대법원은 의료법을 위반한 행위라고 종지부를 찍었다.
대법원은 최근 의료법 위반 혐의의 의사 A씨에 대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단을 유지하며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A씨는 영업사원 B씨의 요청으로 전문약인 발기부전약 100mg을 한 번에 200정씩 7번에 걸쳐 처방했다. 처방한 상대는 B씨가 아닌 신원 불상의 누군가. 법률 용어로는 법률행위의 주체이지만 실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허무인'이라고 한다.
A씨가 허무인 7명에게 처방한 약은 1361정에 달했고, 최대 240정까지 처방했다.
A씨는 지인인 영업사원 B씨가 "다니는 제약회사에 실적용으로 제출하기 위해 처방전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고 허무인 이름으로 처방전을 발급했다고 주장했다.
알고 보니 B씨는 A씨가 발급해준 처방전으로 구입한 발기부전약을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판매할 목적을 갖고 있었다. B씨는 처방전 발급을 요청할 때 약을 판매할 예정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아는 영업사원의 요청으로 대상이 없는 처방전을 발급하게 된 의사 A씨의 행위가 과연 위법한 것일까.
검찰이 A씨에게 의료법 위반이라며 적용한 법 조항은 17조 1항. 진단서 관련 부분으로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 등이 아니면 처방전 등을 작성해 환자 등에게 교부하거나 발송하지 못한다. 환자가 사망하거나 의식이 없으면 직계존비속, 배우자 등에게 교부하거나 발송할 수 있다.
의료법 17조 1항
1심 '무죄'·2심 '벌금형' 엇갈린 판결…대법원의 판단은?
1심 재판부는 '무죄'라고 판단했다. 처방전에 기재된 환자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무인이면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료법 17조 1항의 취지는 처방전 등이 특정인의 건강 상태 정보를 허위 또는 확인없이 기재함으로써 처방전을 바탕으로 잘못된 투약이나 의료 행위가 이뤄지거나 민형사 책임 관련 잘못된 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라는 게 1심 법원의 해석이었다.
1심 재판부는 "처방전 대상인 환자가 허무인이면 처방전 자체가 특정인의 건강 상태 등을 증명하는 문서가 될 수 없다"라며 "허무인은 실존인물을 처방전에 등장한 허무인으로 가장하는 등의 추가적 행위가 없이는 의료법 규정에서 막고자 하는 행위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허무인에게 처방전을 작성해 제3자에게 건네주는 행위는 의료법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며 '무죄'라고 봤다.
반면, 2심 재판부는 판단을 달리했다. 의료법 위반이라고 보고 벌금형을 선고한 것.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한 것 자체가 법을 어겼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 역시 2심 판결이 합당하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의료법 원칙상 처방전의 작성 상대방과 교부 상대방이 동일해야 한다"라며 "진찰 대상이 되는 환자는 처방전의 작성 상대방과 교부 상대방 성격을 모두 가진다. 원칙적으로 의사는 작성 상대방과 교부 상대방 모두를 직접 진찰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A씨는 허무인을 처방전에 환자로 기재하고 제3자인 영업사원에게 교부했다"라며 "처방전의 작성 상대방과 교부 상대방이 모두 달라졌다. 처방전 발급 및 교부의 전제가 되는 진찰행위 자체가 없었다. 처방전에 기재된 환자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달리 평가할 이유가 없다"라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