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투명화가 부른 삭감 대원칙…의료계 더 옥죈다
     2020-12-30 1722
 
심사투명화가 부른 삭감 대원칙…의료계 더 옥죈다

복지부?심평원, 올해 적용한 심사 원칙 뒷받침 고시 차례대로 내놔
입원료에 MRI?CT 진료비 심사 강화 조치…중소병원 대상될듯

"공개 기준(고시)이 없을 시 진료비 심사를 원칙적으로 할 수 없다."

이는 '심사투명화'를 하겠다면서 올해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의료현장에 적용하고 있는 진료비 심사 대원칙이다. 최근 이러한 심사 대원칙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가 고시 개정을 본격화하면서 의료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복지부가 시행을 예고한 '입원료 대원칙'.

앞서 복지부는 심평원과 논의를 거쳐 입원료 산정원칙이 담긴 요양급여 적용기준 고시를 입법예고한 바 있다. 앞으로 병원들은 임상적?의학적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입원료를 산정할 수 있다.

반면, 단순히 환자의 편의성인 경우는 입원료 산정을 할 수 없다.

특히 외래에서 시행 가능한 검사(영상진단 포함)나 처치, 수술만을 위한 입원료 산정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단, 복지부는 환자의 경과 관찰이 필요한 경우 또는 합병증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산정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 놨다.

다시 말해, 의학적으로 입원이 필요한 질환을 확인해야만 건강보험으로 인정되는 입원료 산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령, 앞으로 병원들은 실손보험과 연계해 MRI 검사를 위한 환자 입원은 오직 비급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건강보험 상의 환자 입원은 금지되고, 외래에서만 이 같은 방법이 가능해진다. 또 척추나 통증 주사치료 병원에서 환자 치료방법 선택을 위한 건강보험 상의 입원도 사실상 어렵게 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비인후과와 안과 등 주요 전문병원에서 실시하는 단기 입원 수술의 경우도 심사 삭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즉 입원료 삭감 원칙이 적용된다면 정형외과나 척추?관절, 이비인후과, 안과 등 주요 전문 질환 진료 중소?전문병원 입원 진료비가 심사의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병원계는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복지부와 심평원에 차례대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2일 비공개로 열린 '입원료 일반원칙 간담회'에서도 복지부는 시행의지를 굽히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1월 고시를 확정한 후 2월부터 본격 진료비 심사에 적용하겠다는 것이 복지부와 심평원의 입장이다.

서울의 한 중소병원장은 "1일 입원 뒤 수술 등을 내세웠던 중소?전문병원이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며 "심사에 따른 진료비 삭감만이 문제가 아니다. 실손 의료보험과 연결된 탓에 자칫 복지부 고시를 내세워 보험사기특별법 위반으로 몰려 형사처분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쏟아냈다.

또 다른 정형외과 전문병원장 역시 "최대 3일까지의 단기입원이 주요 심사 대상이 될 것"이라며 "문제는 대학병원은 입원료 기본원칙이 명문화된다고 해도 중증도가 높은 것들이라 삭감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고 결국 중소병원에만 심사 기준을 적용할 것이다. 외래에서 가능하다고 본다면 검사나 수술 모두가 삭감이 될 수 있는 것인데, 그 잣대를 누가 결정하는 것인지도 명문화하지 않아 혼란스럽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판례도 있는데…" MRI 진료비도 거미줄 심사
여기에 복지부는 최근 또 하나의 급여기준 개정을 예고했다. MRI와 CT 등 특수의료장비 사용의 관한 급여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바꾸면서 심평원의 진료비 심사에 힘을 실어 준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병?의원에서 MRI?CT를 사용할 경우 의료법 기준에 맞게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전속 혹은 비전속으로 배치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진료비 심사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구체화한 것이다. 이와 관련 특수의료장비 설치인정기준에 따르면, MRI는 영상의학과 전문의 전속 1명 이상, CT와 유방 촬영용 장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 비전속 1명 이상을 두도록 하고 있다.


특수의료장비 설치인정기준(자료 출처 : 보건복지부)

즉, 뇌?뇌혈관 등 주요 질환 MRI 급여화 등으로 건강보험 진료비가 급증하자 이를 관리하기 위해 급여기준에 특수의료장비 설치인정기준에 맞게 인력과 시설을 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심사를 통해 관련 진료비 지출을 관리하겠다는 복지부의 심평원의 의지가 밑바탕이 된 것인데 정형외과나 척추·관절치료 병원, 재활의학이나 통증 전문 병?의원이 주요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 측은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특수의료장비 품질관리 등의 유무와 관계없이 요양급여 비용청구가 이뤄지는 등 현행 건강보험 제도 운영상에 나타난 미비점을 개선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제는 이 같은 복지부의 급여기준 개정이 대법원 판례 결정과는 다소 엇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7월 대법원은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비전속으로 출근하지 않고 영상 판독 등의 업무를 했다는 이유로 건보공단(요양급여비용 환수 처분)과 보건복지부(업무정지 처분)로부터 행정처분을 받은 A의사가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건보공단과 복지부의 행정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심리하라고 돌려보냈 것이다.

의사협회 측은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 출근 관련 대법 판례 등 특수의료장비 규칙과 관련한 논쟁의 여지가 존재한다"며 "불완전한 규칙을 근거로 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의 규제사항을 강화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 같은 복지부와 심평원의 급여기준 강화 원칙을 두고서 의료계는 '공개 기준이 없을 시 진료비 심사를 할 수 없다'라는 심사 삭감 원칙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종전 심사사례를 바탕으로 한 진료비 삭감은 이제 할 수 없으니 고시 개정을 통해서 기준을 분명히 하고 현미경 심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단체 임원은 "올해 심사 대원칙을 의료현장에 적용했지만 심평원 내부 심사원칙이 빠르게 고시로 전환되지 못하면서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측면을 정부가 염두한 것 같다"며 "의료계에 심사를 투명화하겠다고 밝힌 약속을 지키면서도 진료비 심사도 해야 하는 심평원의 입장이 반영된 급여기준 개정"이라고 봤다.

그는 "결국 의료계를 위해 심사를 투명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고시 개정으로 이어지면서 도리어 의료계를 옥죄고 있는 형국"이라며 "내년에도 기존 심사사례의 고시 전환이 더 많아 질 것이다.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분석심사를 통한 탄력적인 심사를 의료계에 약속하는 방법으로 복지부와 심평원이 업무를 추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출처 : 문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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